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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누룩 꽃 필 무렵" - 미래융합학부 양조발효과 20학번 정행심

2020-05-26 09:32 1,378

‘째각, 째각.’‘ 코로나-19’의 여파로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지금, 누군가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가고 있었다.

 

올해 첫 신입생을 모집한 우리대학 미래융합학부는 대학의 평생교육체제지원(LiFE)사업의 일환으로, 만 25세 이상 만학도들의 학업에 대한 꿈과 열정을 이어주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미래융학합부에는 부동산공유비즈니스과, 사회복지요양서비스과, 양조발효과, 헬스케어매니지먼트과 등 4개 학과가 있다. 재직자, 창업희망자, 퇴직(예정)자 등 다양한 학부생만큼이나 그 연령대 역시도 폭넓다. 만 71세, 고희(古稀)의 나이에 양조발효과에 입학한 정행심 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학교만 오면 쩔뚝거리는 다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집니다.”라며 생애 첫 대학생활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 아름답게 피워 알알이 열매를 바라는 열정

 

부산시 수영구에서 40년 가까이 음식점을 운영 중인 정행심 씨. 그는“누군들 안 그렇겠냐만 저 역시도 어릴 적 어려운 가정 형편에 일찍부터 산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젊어 다 이루지 못한 학업이 제가 걸어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책만 보면 배우고 싶은 생각이 꿈틀거리곤 했습니다.”라며 오랜 시절부터 간직해온 학업에 대한 열정을 담담히 드러냈다.

 

그는 본업인 음식점 외에도 부녀후원회, 장학회, 새마을부녀후원회장을 역임하는 등 지역사회 기여를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에 왕성하게 참여해왔지만, 학업에 대한 허기짐만큼은 끝내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끝에, 지난 2008년 학력인정 부산예원고등학교에 입학해 2년 뒤 꿈에 그리던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그리고 10년 뒤, 이번엔 대학 졸업이란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늦게나마 고등학교 졸업장을 취득한 덕분에 이렇게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그러나 그가 대학 입학을 결심했을 때, 주변의 만류가 상당했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 대학에 왜 가냐고 물었어요. 건강을 챙기면서 그 돈으로 맛있는 것 사먹고 여행이나 다니지 무엇 하러 머리 아프게 다시 공부를 하느냐고 질책하기도 했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이렇게 답하고 했습니다. ‘아름답게 피워 알알이 열매를 바라는 열정은 나이에 억압되지 않는답니다.’”

 

■ “오랜 한식당 경험을 살려 전통방식의 수제 탁주를 만들고파”

 

최근 맥주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수입맥주를 필두로 차별화된 풍미를 가진 수제맥주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2014년 주세법이 개정된 이후,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매년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부산은 수제맥주의 메카라 불릴 만큼 수영, 온천장, 기장, 송정 등에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명한 수제맥주 양조장이 운영되고 있다.

 

정행심 씨는 “수제맥주의 성장세와 더불어, 최근 코로나-19로 우리네 환경이 악화됨에 따라 식품발효와 같은 건강식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라며 양조발효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어 그는 “또한, 오랜 세월 한식당을 운영해왔기에 그 경험을 살려 전통 방식의 수제탁주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욕심도 생겼어요.”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와 만난 16일은 한 학기의 반환점이라 할 수 있는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이었다. 정행심 씨는 “오랜만에 다시 시험공부를 하려다보니 암기가 잘 되지 않아 걱정이 많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긴 했는데 결과는 장담 못하겠습니다.”며 웃었다. 그간의 대학생활이 어떠하냐는 물음에 그는 “ 대학에 있는 평생교육원에서 이것저것 배운다고 캠퍼스를 다닐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이 가슴을 차고 오릅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높고 넓은 건물에 내가 들어가 지식을 익힌다고 생각하니 늘 가슴이 뜨거워집니다.”라며 뜨거운 학구열을 드러냈다.

그는 현재 양조발효과의 최연장자다. “처음 오리엔테이션 때 학생들을 만났는데, 의외로 젊은 분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양조회사에서 일을 하시다 전문적으로 주조과정을 배우기 위해 입학한 분, 크래프트 비어 브루어리 창업을 목표로 하는 젊은 청년들, 그리고 발효음식에 관심을 갖고 입학한 현직 교수님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다양한 경험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2년간 함께 호흡한다는 게 제겐 큰 기쁨입니다. 또한, 동기들 모두가 큰누나, 큰언니로 대하며 잘 도와줍니다.”

 

■ 흥미로운 양조실습 … 가정에서도 탁주 주조에 도전

 

미래융합학부 4개 학과는 지난 3월 14일부터 정상적으로 개강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온라인 수업과 대면수업을 병행해 진행되며, 대면수업은 매주 토요일 대학 석당문화관에서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온종일 이뤄진다. 양조발효과는 수제맥주의 품질관리이론, 제조공정 및 제조설비 관리 등 양조발효 전반을 아우르는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급성장하는 수제맥주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 홈브루잉 전용강의장 및 상업맥주제조시설 등 양조발효 전문교육을 위한 최적화된 교육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주요 설비로는 브루하우스, 온수탱크, 냉수탱크, 발효조, 숙성조, 냉동 창고, 맥아 분쇄기 등이 있다.

그간 수업을 하면서 가장 흥미로운 어떤 것이었냐는 물음에 정햄심 씨는 일체의 고민없이 ‘양조실습’을 손꼽았다. 그는 “이론수업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4개조로 나뉘어서 직접 맥주를 만드는 실습이 흥미로웠습니다. 맥주에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고, 또한 주조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는지 알게 되었죠.”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두 번 시도했지만, 두 번 다 결과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전처리에서부터 발효, 숙성 과정에 이르기까지 주조 과정에서의 사소한 실수 하나하나가 맥주 품질 전체를 좌우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습수업은 학교에서 끝나지 않는다. “실습수업 경험으로 집에서도 직접 탁주를 만들어보고 있어요. 이 역시도 2번 시도했는데, 아직은 미흡한 게 많아 번번이 실패만 하네요. 가정에서 하다 보니 아무래도 발효과정에서 적정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지 못한 점이 실패 요인인 것 같습니다. 이제 3번째 도전하는데 엊그제 새하얀 ‘꽃가지’가 예쁘게 핀 걸 보니 잘 될 것 같아요.”누룩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표면에 생기는 새하얀 점막과 같은 효모작용을 일명 ‘꽃가지’라 부른다. 발효가 잘 되었다는 뜻이다.

 

■ 양조발효과 전도사, “총명한 지혜가 따라주길”

 

정행심 씨는 스스로를 양조발효과 전도사라고 칭한다. 주변 지인들에게 내년 양조발효과 입학을 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우선은 대학에 이런 과정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또한, 알더라도 덜컥 한다고 결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늦은 나이에 공부한다는 점이 괜히 자식들에게 눈치 보이거든요. 그렇지만 미래융합학부에서 우리같은 만학도를 배려해 입학료와 수업료를 감면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큰 경제적 부담 없이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에 긴 설득 끝에 지인 셋을 섭외했답니다.”라며 웃었다.

그는 그간 대학생활에 대한 소회를 짧은 글로 정리했다. ‘하늘을 바라본다. 하고 싶은 일이 태산이다. 내 머리에 잠자고 있는 뇌를 어떤 비로 씻어 낼 것인가. 소낙비가 깨끗이 씻어내려 한마디를 들으면 두 마디를 알아듣고 두 마디를 들으면 세 마디를 기억할 수 있는 총명한 지혜가 따라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도 나의 희망이겠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반의반이라도 충전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언젠가는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 밝은 글눈을 틔우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인고의 시간 끝에 피어난 누룩 꽃처럼, 그의 대학생활 역시 그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