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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대는 봄이어라’ 2018학년도 약재자원과 만학도들의 이야기

2018-04-05 15:33 3,645

생식당에서 밥 먹는 게 제일 행복해요

 

우리는 안다. 물질적 풍요가 우리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결정적 요인이 아님을. 또한, 우리는 학생식당에서의 식사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에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최종 목표인 행복의 절정을 경험한다는 것이 형평성이 안 맞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잘못된 선택으로 빚어진 오전 수업을 겨우 마치고 학생식당에 당도한 학생들의 웃픈 절규일까. 혹은, 기말고사를 무사히 마친 뒤 드디어 맘 편하게 먹는 첫 끼라서? 물론, 그날 따라 밥이 정말 맛있었을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예상은 빗나갔다.

 

▶ 2018학년도 약재자원과 만학도 김을자, 김정선, 이이남, 배정하, 송옥순, 김외선, 김남양, 김종호(왼쪽에서부터)

63.62. 이 말을 내뱉은 이들의 평균 연령이다.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고스란히 담긴 약재자원과의 새내기들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지난 한 달간의 대학생활이 어땠냐는 질문에 천진난만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는 그들의 모습은 세월과 나이를 잊게 만든다. 2018학년도 우리대학 약재자원과에 만학도 전형으로 입학한 김남양(62), 김외선(66), 김을자(63), 김정선(63), 김종호(60), 배정하(56), 송옥순(73), 이이남(66) 씨의 얘기에 주목해보자.

 

대한민국에서 장녀로 살아남기

 

장남이 잘 돼야 집안이 잘 된다과거엔 그랬다. 차차 미래의 가장으로서 가정과 가족에 대한 책임을 짊어져야 할 장남을 위해 가정 내 다른 구성원들의 희생이 당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희생의 중심에는 장녀가 있었다. 장남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도와 가사와 육아를 도맡는 것이 부지기수였고, 교육의 기회 역시 박탈당하고 있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밤낮으로 불이 꺼지지 않는 공장에서 퀴퀴한 먼지를 들이마시며 미싱을 밟는 여공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제가 우리 집안의 장녀였어요. 내 아래로는 10살 차이나는 동생들이 있었고요. 동생들과 나이차가 많이 나다보니, 어릴 적부터 동생들을 돌보느라 내 스스로에게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며 올해로 예순 셋을 맞는 김을자 씨가 과거를 회고했다. “비록 나는 학교의 문턱을 제대로 밟지 못했지만, 동생들도 나와 같은 길을 가게 할 수는 없었어요. 그렇게 평생을 여기저기에 치이다 이제야 숨 좀 고르고 뒤를 돌아보니, 저 혼자만 남았더군요.”

 

그룹 내에서 가장 막내인 배정하 씨 역시 장녀이다. 한때는 작은 가구점을 운영했던 배정하 씨는 마흔 일곱의 나이에 청신경종양이라는 병마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제야 삶의 안정을 찾아가던 그에게 갑작스레 들이닥친 종양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배정하 씨는 중환자실에 실려 가서 며칠 만에 의식을 찾았을 정도로 당시엔 정말 심각했었죠. 그간 제 자신을 혹사시켰던 것에 대해 몸이 보내는 최후의 통첩이었던 셈이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허나, 그것이 인생의 위기임과 동시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그때 가족들이 이제는 일에서 손을 떼고, 그렇게 원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족들의 응원과 지지 속에 배정하 씨는 2014년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중 하나인 부산예원중학교에 늦깎이로 입학을 결정했고, 그곳에서 지금 자매처럼 똘똘 뭉쳐 다니는 김외선, 김정선, 송옥순, 이이남 씨를 만나게 됐다. 여자, 며느리란 이유로, 혹은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희생을 강요받고, 때론 허리디스크·퇴행성관절염 등 건강상의 문제로 기나긴 세월동안 인내해왔던 그들. 비록 서로 나이가 맞지 않았지만, 동시대의 같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금세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의지하게 됐다. 그렇게 중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부산예원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됐다.

 

 

나 자신의 몸을 알아가는 시간약재자원과를 선택한 이유

  

어느덧 4년의 시간을 지나 예원고의 졸업을 앞둔 시점, 또 다른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여러 의견들이 교차하던 무렵, 올해로 일흔 셋으로 가장 연장자인 송옥순 씨가 맏언니답게 대학 진학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가 캠퍼스 교정이라도 한번 제대로 밟아 봐야 되지 않겠냐는 맏언니의 당찬 각오에 네 사람은 다시 한 번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 ①실습 중인 약재자원과 학생들 ② 약재자원과 수업

결심은 섰으나,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가 문제였다. 송옥순 씨는 주변에서는 아무래도 다들 여자이고 나이가 있다 보니 사회복지과를 권했지만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라며 당시 탐탁지 않았던 속내를 밝혔다. 송옥순 씨는 사실 우리가 누구를 돕기보다는 이제 도움을 받아야하는 나이니깐요(웃음).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살고 싶었답니다며 말을 이었다. 그 무렵, 우리대학 약재자원과 이문조 교수가 대학 및 학과 홍보 차 부산예원고등학교를 방문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이남 씨는 당시의 만남을 기적적인 일이라고 표현했다. 이이남 씨는 부산 지역에 학력인정 고등학교가 여럿 있는데, 그 중에서 이문조 교수님께서 유일하게 방문한 곳이 우리 예원고였답니다라고 말했다. 이이남 씨는 당시 교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어요. 학업적인 성취뿐만 아니라, 약재자원과를 통해서 그간 우리가 소홀히 여겼던 스스로의 몸을 배우고 알아갈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셨거든요라고 말했다.

 

보다 심도 깊은 학문을 추구하기 위해 선택한 길

 

현대 한국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듦에 따라 당뇨, , 고지혈증, 고혈압, 동맥경화 등 각종 만성질환의 질병 예방이나 건강 증진 및 재활 등 사전 예방적이고 포괄적인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웰빙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대와 자연 요법을 이용한 건강관리와 한약재에 대한 관심이 최근 크게 늘어낢에 따라 한약재 및 한방보건 분야 부산, 경남 지역 유일의 학과인 우리대학 약재자원과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약재자원과 만학도 중 청일점인 김종호 씨는 30여 년간 목공소에서 근무했던 베테랑 목수이다. 그가 약재자원과를 지원하게 된 계기는 과거 발병했던 위암의 영향이 크다. 김종호 씨는 당시 발병원인을 목수라는 직업 특성상 체력적인 소모가 큰 탓에 과음과 불규칙한 식사로 인해 빚어진 일이라고 설명하며 다행히 조기에 발견해 현재는 괜찮은 상태이고, 그 때를 계기로 건강관리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김종호 씨는 해독작용으로 몸을 깨끗하게 만들어주고 체질개선에 도움을 주는 음식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약재자원과와의 인연으로 이어지게 됐다.

 

현재 부산 북구 만덕동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피부 관리실을 운영 중인 김남양 씨는 제대로 된 한의학 공부를 하기 위해서 약재자원과 입학을 결정했다. 오랜 세월 피부 관리실을 운영해온 김남양 씨는 해를 거듭하면서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한 한계를 느꼈습니다라며 입학을 결정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김남양 씨는 이미 약재자원과에 입학하기 전부터 피부 관리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여러 세미나와 교육과정에서 공부했지만, 그곳에서 배웠던 지식은 학문에 대한 자신의 갈증을 속 시원하게 해소시켜 줄만큼 학문적 수준이 심도 깊지 않았다. 그러던 중 주변의 권유로 한의학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김남양 씨는 피부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며 외부 환경적인 요인으로 피부에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가장 큰 원인은 체질과 내부의 생리적 문제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몸을 하나의 생태계로 바라보고 관리하고자하는 한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죠.”

 

 

▶ ①창업경진대회에 출전을 준비 중인 모습 ②창업경진대회에 출전한 약재자원과 오메동 팀 ③약재자원과의 항노화경진대회


21세기 윌빙시대를 선도하는 약재자원과 실생활에서부터 인생 2모작을 위한 발판에 이르기까지

   

우리대학 약재자원과는 지난 2006년 신설된 이래로, 현재까지 총 8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21세기 웰빙시대를 선도해나가는 명품학과로 도약을 거듭하고 있다. 우수한 보건의료 전문 교수진과 한약재감별학습실, 한약재가공실습실, 약재표본실, 약용식물 재배실습장, 이화학실습실 등 실습 환경 및 체계적인 NCS 기반의 실무 위주의 교육과정을 통하여 전공실무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입학 전부터 한방에 관심이 컸던 김을자 씨에게 약재자원과 수업은 지루할 틈이 없이 재밌고 즐겁다. 검정고시를 통해 고교과정을 마친 김을자 씨는 그전부터 한의학을 독학으로 알음알음 공부해왔기 때문이다. ‘음양오행설’, ‘명리학’, ‘한국사주등 생소한 단어를 문장에 자연스럽게 녹여서 풀어내는 그 역시 김남양 씨처럼 보다 전문적으로 한방을 배우기 위해 입학을 결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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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재자원과의 약용식물 재배실습장 사진

현재는 한의학학개론, 본초학 및 실습, 인체생리학, 약용식물재배 및 실습을 이수하고 있는 김을자 씨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아무래도 실습과목인 약용식물재배 및 실습수업이다. 김을자 씨는 약용식물 과목은 실습과 이론을 병행하는 수업인데, 스포츠센터 뒤 쪽에 위치한 약용식물 재배실습장에서 구기자, 감국 등 다양한 약용식물들을 키우고 관리하는 것이 무척이나 재밌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을자 씨는 향후에 제가 재배한 식물을 수확해서 약차를 달이거나 기존의 음식에 접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죠라며 앞으로의 수업에 대한 기대와 각오를 내비쳤다.

 

배정하 씨도 김을자 씨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실습 과목 외에도 학문 자체가 우리 세대의 관심사와 잘 맞아 떨어지다 보니 수업시간이 늘 기다려집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약재자원과는 학과 특성상 중·장년층의 관심도가 높아 성인고 졸업자의 진학, 대학졸업자들과 관련분야 종사자들의 재입학이 많다. 매년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이 약재자원과 입학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비록 한 달의 수업이었지만, 배정하 씨와 김종호 씨는 벌써부터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학문적 성취에서 끝맺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배운 지식을 발판 삼아 인생 2모작을 차근차근 설계해 나갈 셈이다. 김종호 씨는 현재로선 전공심화 과정까지 충실히 이수해나갈 예정입니다라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그들이 사는 세상, 좌충우돌 만학도 일기

 

가정에서는 누군가의 배우자이자, 부모인 그들이 일상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여전히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남양 씨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김남양 씨의 시계는 오후 수업이 다 마친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의자를 박차고 강의실을 부리나케 빠져나오는 것이 일상이다. 그 뿐만 아니다. 프린터 출력을 위해서 사진관을 찾았다는 김종호 씨의 말에 일순간 좌중이 웃음을 뿜으며 자지러지기도 했다. 고질적인 무릎 관절염으로 고생 중인 김정선 씨는 입학 전 제때 출석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한다. 김정선 씨가 가파른 경사를 이르러 처음에는 코가 바닥에 닿는 줄 알았다고 말하자,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깨알 같은 글자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교재가 교수님들보다 더 무섭단다.

 

배정하 씨는 만학도로서 감수해야할 만한 고충들이 여럿 있지만, 어느새 한 달이 지나다보니 많이 극복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배정하 씨가 가장 먼저 익힌 것은 각 대학 건물 내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통달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와 달리, 대학은 수업마다 강의실이 달라 이동이 잦더라고요. 그래서 언니들을 모셔야 하다 보니, 엘리베이터 위치를 빠삭하게 꿰뚫을게 급선무였어요라며 웃었다. 수업마다 달라지는 강의실에 웃지 못 할 상황도 종종 펼쳐지곤 했다. 배정하 씨는 어쩔 때는 수업이 일찍 끝나서 미리 타관 강의실에 가있겠다고 나섰다가 강의실 문을 벌컥 연 적이 있었는데, 한창 수업 중이였지 뭐예요. 그렇게 민망한 경우도 종종 있었어요라며 얼굴을 붉혔다.

 

허나, 나이를 먹을수록 어두침침해지는 눈의 노화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때 주변의 도움이 컸다. 이이남 씨는 교수님들의 배려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우리 같은 만학도를 위해서 교수님께서 번거로우실텐데 프린터 물을 하나 더 준비해주시더라고요. 기존의 것보다 활자가 큼직큼직해서 굳이 돋보기안경이 필요 없도록 말이죠. 그런 세심한 배려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세대 차이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틀어놓는 판국에, 아들 딸 벌인 어린 학생들과의 대학생활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는 물음에 그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배정하 씨는 동기들이 자신들을 이모라고 친근하게 부른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배정하 씨는 사실 나이 차가 크다보니 처음엔 서먹서먹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하지만 먼저 학생들에게 다가가려 노력하니, 학생들도 우리의 노력에 화답해왔습니다고 말했다. 김외선 씨는 학과에서 자신들을 위해 마련해준 ‘1:1 멘토링 제도가 교우 관계와 대학생활 적응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컴퓨터 등 전자기기를 다루는데 익숙지 않은 우리를 위해서 학과에서 젊은 친구들과 우리를 개별적으로 짝을 지어줬어요. 제 아들딸들도 이 핑계 저 핑계대면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데, 이렇게 옆에 진득하게 앉아서 젊은 친구들이 도와줄 때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김외선 씨는 앞으로도 서로 배려하면서 즐거운 대학생활을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했다.

 

때마침 배정하 씨가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서 최근에 있었던 일을 조곤조곤 풀어냈다. 배정하 씨는 최근에 두 언니가 MT에 한번 갔다 오고 나더니, 15년은 회춘해서 돌아오셨다고 말하며 웃었다. 얘기는 이렇다. 지난 3월 말에 실시된 약재자원과 MT. 다른 만학도 동기들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한 가운데, 김외선, 송옥순 씨 단 둘만이 MT에 참석하게 됐다. 3개 학과가 연합해서 MT를 진행하다보니, 첫 대학수업 만큼이나 떨렸다고 한다. 거기다 원체 성격부터가 조용조용했던 두 사람. 하지만,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간 정을 차곡차곡 쌓아왔던 젊은 친구들의 따뜻한 배려와 지지 덕분에 MT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더욱이 MT 첫날, 두 사람이 함께 장기자랑 무대에 올라가 가수 김태희의 소양강 처녀를 멋들어지게 뽑아내 학생들로부터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 벚꽃이 만개한 캠퍼스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약재자원과 만학도들


그대는 봄이어라다시 찾아온 대학 시절

 

청춘이란 인생의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의 상태를 뜻한다.’ 시인 사무엘 울만의 말이다. 지금 행복하시냐는 물음에 그들은 답했다.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 ‘학교 셔틀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 것’, ‘벚꽃이 만개한 캠퍼스를 함께 거니는 것’, ‘수업에 맞춰 강의실을 이동하는 것’, ‘젊은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것이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위 하나하나가 행복하고 즐겁다는 그들의 대답 속에서 청춘을, 그리고 늦었지만 결국에는 다시 돌아오는 봄의 향기와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서 꼭 모두 다 함께 이 경주를 무사히 완주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그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오랜만에 책을 보니깐 머리에 쥐가 나요. 다가오는 중간고사가 정말 걱정이에요라는 김정선 씨의 말에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준 김남양, 김외선, 김을자, 김정선, 김종호, 배정하, 송옥순, 이이남 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