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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몽골댁, 한국에서 꿈을 이어가다.

2015-03-11 08:03 4,289

'몽골댁' 한국에서 꿈을 이어가다.

몽골출신 주부로 방사선과 입학한 오선영씨

 

바트엘데느 오랑 치메크. 한국명 오선영씨. 1982년생. 몽골출신의 한국나이 34세 주부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전문대학에 진학했다.

오씨의 꿈은 의사였다. 1남 3녀 형제 모두 몽골의 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오씨를 비롯한 형제들은 공부를 잘했다. 돌아가신 부친은 몽골 공무원이었다. 여유있는 가정형편에서 자랐다. 사업차 몽골을 방문한 남편을 만나 2006년 결혼하면서 남편의 고향인 부산으로 왔다. 자녀들의 교육문제와 따돌림을 우려해 2010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오선영(방사선과 15학번)

 

오씨는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있는 Great mongolia 대학교에서 관광을 전공했다. 의사가 되기 위한 의과대학을 포기한 것은 현실적인 문제였다. 지금 몽골은 관광산업분야가 매우 활발하고 인기가 높다. 그래서 오씨도 관광관련 학과로 진학을 했다. 그러나 의사가 되겠다는 꿈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씨는 남편과 결혼하면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왔다.

입학식에 참석한 오선영씨(가운데 붉은옷)

 

공부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낯선 한국생활에 적응하기도 힘들었고, 육아 등 좀처럼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여유가 생기자 마자 든 생각이 공부였다. 남편과 의논했다. 다행히 남편도 오씨의 생각에 동의해 주었다. 특히 6학년과 3학년인 아들과 딸은 “엄마 파이팅”을 외치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전문적인 의학용어가 많아 한국 학생들도 힘들어하는 보건계열 학과로 진학하는 어려운 결정을 한 것도 이런 오씨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비록 의사는 아니지만 모국 몽골의 취약한 의료분야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오씨는 학업을 다 마치고 나면 몽골로 돌아갈 생각이다. 물론 남편과 의논을 해야 하는 것이지만 남편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방사선과를 선택한 것은 몽골에서 가장 취약한 것이 병명의 확진이라는 나름의 판단이 있었다. 방사선과는 CT촬영 등 확진을 위한 검사를 주로 하기 때문에 한국의 앞선 기술력을 모국인 몽골에 전해주고 싶은 생각에서다.

 

대학 진학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고, 대학졸업 후 한국과 몽골을 오가며 의료분야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도 허락(?)이 있었다. 몽골의 의료서비스 분야에 도움을 주겠다는 오씨의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이었다.  

 

오씨는 한국에 있으면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동의대 외국인지원센터에서 통역과 번역을 하면서 가정에도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친동생이 6년 전 부터 부산의 한 대학을 다니고 있어 큰 도움을 받고 있다. 함께 지내고 있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오씨가 아직은 어린 아이들을 두고 대학 진학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도 동생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급한 일이 생기면 대학원생인 동생도 기꺼이 도움을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친동생은 부경대를 졸업하고 인제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있다.

 

“몽골에서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도 서로 친구가 될 수 있고 격의 없이 지내요. 그러나 한국은 한 살이라도 많으면 깍듯하게 대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저보다 10살 이상 적은 학생들이 너무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먼저 다가가 생각이에요. 공부는 자신 있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