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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9 11:05 2,721
“발명은 숨어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오걸 전기과 교수는 “발명이란 어렵거나 고차원적인 것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에 하고 있는 것들, 현재 직면한 상황 속에서 출발하죠. 저는 모든 아이들이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어른들의 사명은 이런 아이들의 숨겨진 가능성들을 공론화 과정을 통해서 도출하고 육성시키는 것입니다”라며 발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 전기과 이오걸 교수
■ 지난해 제 20회 발명경진대회 개최, 총 343개 팀이 참가할 만큼 전국 대회로 확실히 자리매김
여름의 초절정인 7월 끝자락 … 매년 이맘때면,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한 여름의 폭염을 뚫고 우리대학으로 모여든다. 방문 시기만큼이나 그 구성 역시 특이하다. 막 피어오르는 여드름으로 볼이 새빨갛게 물든 중학생들과 고등학생들 사이로 앞니 한 두 개가 없는 건 예삿일인, 아직은 앳된 초등학생 다수가 섞여 있다. 중고등학생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혹은 절반에도 못 미치지는 그들이지만 전혀 기죽은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따금씩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이 호기롭기도 하다. 그들 사이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각자의 겨드랑이 사이엔 낀 둥글게 말은 원통형 도화지 한 장. 그리고 또 하나, 긴장과 걱정 그리고 기대가 뒤엉킨 표정. 이들은 바로, 우리대학에서 해마다 전국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발명경진대회에서 두 자릿수의 쟁쟁한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본선 진출한 학생들이다.
지난 1998년 ‘초·중·고 및 중소기업 우수발명제품전시회’란 이름으로 첫 개최된 ‘DIT전국학생과학발명경진대회’는 올해로 21회째를 맞고 있다. 첫 회 출품작 수가 110개였던 것에 비해 작년엔 3배를 넘는 343개의 작품이 출품될 만큼, 이제는 전국을 대표하는 발명경진대회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경진대회의 성장 이면에는 발명대회의 전신인 중소기업 발명작품전의 개최에서부터 현재까지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있는 이오걸 전기과 교수의 공로가 있었다.
▶ 이오걸 교수의 연구실, 중앙의 푸른색 전구가 발명대회에 출품된 입상작이다.
테이블 위에 어지러이 놓여 있는 칙칙한 회색빛 판넬, 갈피를 못 잡을 듯 여기저기 뻗쳐있는 전선, 그 주변에 너저분하게 놓여 있는 잡다한 공구들, 그 뒤편으로는 정체, 용도가 전혀 짐작되지 않는 구형 전자기기들이 공간을 한가득 채우고 있다. 수납공간인 책장 역시 아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양상으로, 제 구실을 해냈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었다. 뛰는 사람, 떠드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부산하다’라는 표현이 제 격인 이오걸 교수의 연구실.
허나, 모퉁이에 있던 푸른색 전구를 집어 들며 이오걸 교수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이 푸른색 전구는 외부의 충격 등 흔들려도 풀리지 않도록 특수한 구조로 설계된 꼭지쇠를 갖추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플러그 부분이 자유롭게 회전하여 선 꼬임, 합선 등의 문제를 해결한 플러그, 목 통증·어깨 결림 등 목디스크 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를 위한 지압 베개,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고안된 특수재질의 음료수 캔, 시간을 조절할 수 모래시계 등 연구실 곳곳에 숨겨져 있던 다양한 학생들의 발명품들을 차례로 설명했다. ‘발명은 숨어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이오걸 교수의 신념과 꼭 닮아 있었다.
■ 대통령상 수상, 1세대 벤처붐 … DIT전국학생과학발명경진대회의 탄생
이오걸 교수는 책장 속에서 색 바랜 신문 스크랩 몇 장을 꺼내들었다. 스크랩된 기사 속의 사진에서 젊은 시절 이 교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 발명경진대회 및 발명동아리와 관련된 신문 스크랩 자료
시작은 전기과 학술 동아리였다. 지식정보화혁명인 3차 산업혁명의 태동기인 90년대 중반, 이오걸 교수는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여 학생들에게 창의력 등 새로이 주목받는 자질과 역량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전기과 학생들과 함께 학술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이 교수는 “처음에는 학내 동아리로, 발명 활동을 장려함으로써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역량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 컸습니다”라고 당시의 취지를 밝혔다.
그렇게 활발히 발명 및 학술 활동을 이어가던 중, 이듬해 기어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전기과 2학년 김선오 씨가 1995년 대한민국 학생발명전시회에 ‘안정기 없이 점등할 수 있는 형광등’을 출품하여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오걸 교수는 “안정기는 형광등이 점등할 수 있도록 필라멘트를 가열하고 고전압을 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당시에) 일반적으로 쓰이던 초크를 사용하는 자기식(재래식)안정기는 전자식에 비해 전력손실도 크고 소음을 유발하는 등 단점이 많았습니다”라며, “김 군은 군 시절 이런 생활 속의 불편을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전역 이후 학술 동아리 구성원들과 함께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생했고, 결국 대통령상 수상의 결실을 맺었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교수는 “당시 심사위원들로부터 형광등의 역사를 바꿀지도 모른다라는 극찬을 받을 만큼 획기적인 발명품이었습니다”라며 뿌듯한 웃음을 내지었다.
이를 계기로 학생들의 발명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젊은 시절 찰나의 재치가 아니라, 심사위원의 극찬처럼 ‘역사를 바꾸는 혁명’으로 말이다. 이에 1996년 이오걸 교수는 중소기업과 대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중소기업 발명작품전을 개최했다. 학생들의 우수 발명품을 발굴, 중소기업의 생산시설과 기술력을 연계해 발명품의 상용화를 끌어낼 심산이었다. 이러한 활동은 해를 거듭할수록 활발해져갔다. 특히, 1997년 IMF 국가부도 상황 속에서 대기업 주도의 경제성장의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회의적인 시각과 함께 정부가 이를 타개할 방법으로 IT중심의 벤처기업 육성에 주목함에 따라 이러한 열기는 더욱 뜨거워져갔다.
그와 함께 교내 학술동아리였던 전기과 스터디그룹은 벤처발명연구회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탈바꿈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오걸 교수는 “갑자기 들이닥친 국가적 위기 속에서 모두가 저마다 자신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승부를 펼쳤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1998년 9월 28일, ‘제 1회 부산 경남 초중고 발명 작품 전시회’가 개최됐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 경제에 새로운 활력과 동력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저는 그 길을 발명, 학생 그리고 교육에 달려있다고 보았습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에게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런 생각과 아이디어를 발현시킬 수 있게 돕고 싶었습니다”라고 말을 이었다. 이후 대회는 양적 성장을 거듭해나갔고, 2002년에는 전국대회로 격상되었으며 부산시의 재정적인 뒷받침도 이어졌다. 이후, 2005년 8회에는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다수의 공공기관들의 참여가 이어져 현재는 총 상금규모 500만원에 이를 만큼 규모가 커졌다.
■ 올해로 21회, 양적 성장 외에도 출품분야의 다양화 등 질적 변화
규모가 커지면서 대회의 양상도 달라졌다. 이오걸 교수는 “출품작 증가 등 양적인 성장세만큼이나, 출품작 전반의 수준이 올라가고 출품분야가 다양화 되는 등 질적인 부분에서의 변화도 큽니다”라며 그간 대회의 변화상을 얘기했다. 이 교수가 꼽은 가장 큰 변화는 ‘출품 분야의 다양화’이다. 이 교수는 “과거에는 전기, 기계, 생활 용품 등 유형有形 제품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무형無形 자산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예를 들어,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이나 혹은 특정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론 같은 것들 말이죠”라고 말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발명대회 역시 2016년 소프트웨어(S/W) 창의 작품 분야를 새롭게 신설했으며, 지난해 ‘시각 장애인을 위한 마법지팡이’, ‘긴급차량 지원 자동 신호 시스템’, ‘아두이노를 이용한 가스 누출 경보기’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 작품들이 출품됐다.
▶ 제20회 DIT전국학생과학발명경진대회 현장스케치
이오걸 교수는 발명대회 외에도 1998년부터 벤처발명연구회와 함께 초중고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학발명교실을 매년 운영해오고 있다. 또한, 2009년부터는 잠재력발굴 경진대회라는 다소 생소한 명칭의 대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사회의 학력주의라는 고질적 병폐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과 끼를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최근의 인력 미스매칭 현상과 등 국내 노동시장의 만성적인 실업 문제를 낳았습니다”라며 잠재력발굴 경진대회 개최의 목적을 설명했다. 이름만큼이나 대회 분야 역시 특이하다. 큐브 빨리 맞추기, CAD 분야 설계, 워드 타이핑 등 어느 특정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러 교육기부 활동을 통해서 학생들의 투박하고 아직은 정제되지 않았지만 생기발랄한 생각들을 끌어안고자 하는 이오결 교수의 학생을 향한 애정 어린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각이 그에 합당한 존중과 배려를 받을 수 있길”
오는 23일 21회 경진대회의 본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이오걸 교수는 발명경진대회의 한 단계 더 큰 도약을 꿈꾸고 있었다. 이 교수는 “많은 학교들에게 학생들이 이 대회 외에도 다양한 발명경진대회에 참여할 수 있게끔 배려하고 독려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교사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서 미래사회를 살아갈 우리아이들에게 발명, 창의력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되는 것이 선행되야 하겠죠”라며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이어 “또한, 발명대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각이 그에 합당한 존중과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특허 출원 외에도 제품 상용화, 창업 및 멘토링 지원 등 후속 연계지원을 확대해나가고 싶습니다”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